붉게 물든 하늘이 점점 남청색으로 어두워져만 갔다.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손목시계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곧 해가 완전히 저물 때였다. 상부에서는 확실히 하기 위해 완전히 밤이 되면 진입하라고 했지만, 비토레는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신부복을 입었지만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군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각 잡힌 태도의 남자는, 심지어 등에 천으로 감싼 대검을 매고 있었다.
노을지는 순간에는 삿된 것과 인간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낮에는 하느님이 내리신 은총이 밝게 비추고 있어 그림자를 확인하기 어렵다. 확실하게 알아차리려면 밤에, 인도하는 등불을 비춰야만 한다. 하지만 비토레는 그 모든 것을 건너뛰어도 상관 없다는 듯,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을 두고 성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제대로 된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흐물흐물 뭉개져 인간 둘 셋이 합쳐진 고깃덩어리, 간신히 눈만 움직이는 황금빛 동상, 여러 명의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핏빛 욕조....... 끔찍한 장난질이다. 그러나 아마도 저 자들이 과욕을 부렸으리라.
비토레는 그들을 무시하며 성당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검고 깨끗하고 매끄러운 사제복 위의 로자리오가 그가 걸어갈 때마다 흔들린다. 그러다 비토레가 우뚝 멈춰 섰을 때, 십자가 또한 멈추었다.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기도하는 이의 주변에는 어떠한 더러움도 없었다.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르기 힘든 존재들도 없었고, 핏자국도 없었으며, 은은하게 빛이 감도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지옥의 한구석에서 아름다운 이는 기도하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신앙을 의심할 길 없다는 듯이. 사람의 발소리에도 눈꺼풀을 들어올리지 않고.
비토레가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를 의미하심인가? 그가 기도하고 있는 것은 역십자가였다. 물론 이 난장판에서 홀로 깨끗하게 기도하고 있는 이가 베드로에게 기도하고 있을 리가 없다. 비토레가 딱딱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악마의 거짓된 말 따위 듣지 않겠다.”
비토레는 삿된 것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대검을 겨눈 것이 단지 위협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악마가 조금 당황했다.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두루는 근육질의 남성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병기 같았다. 당황한 악마가 말을 더듬었다.
준비했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니, 잠깐, 내 이야기를 좀 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왜,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다들 악마의 속삭임에 홀리곤 하던데....... 너무 성급해요, 인간이라 그런 건가요? 난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니까요, 진짜로.”
물론 유려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했지만, 그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은 인간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운 감도 있었다. 이렇게 크게 한 탕을 했으니 당연히 바티칸에서 거물을 보냈으리라 생각은 했건만, 느 껴지는 분위기가 일반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당연히 홀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문답무용.”
비토레가 아예 대꾸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적어도 이 정도의 대답은 해 주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과 흐트러짐 없는 태도에 악마... 루키는 그가 단순히 근육질투성이 인간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귀에 뭐라도 끼고 있는 건가요? 아하... 알겠다. 무슨 성물 같은 거로 방어라도 하고 있는 거죠? 소용 없어요. 밤이 되면 이제 이 성당은 더욱 제 것이 될 텐데요. 당신도 곧 이 곳을 뒹굴고 있는 다른 인간들과 다를 바 없는 꼴이 되겠네요.”
악마는 이 고지식하고 단단해 보이는 남자의 타락을 잠시간 상상했다. 다른 인간들보다 맛있을 것 같았다.
악마의 등에서 거대한 피막이 피부와 옷감을 뚫고 튀어나온다.
검은 박쥐 날개를 달고 악마는 공격을 피했다. 한 번 한 번이 묵직한 공격이었다. 이 인간에게는 특이한 점이 없었다. 굳이 여기까지 이런 자를 보내다니, 한심한 일이다. 단지, 그가 쓰는 무기인 대검 정도만 눈에 띄었지만, 그저 그런 성물이겠지. 루키가 조소했다. 지금은 그를 홀리기 위해 구슬릴 뿐이다.
나긋하고, 요염하게. 속닥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비토레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걸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들어 주진 않겠지.”
다시 한 번 검이 휘둘러진다.
이크! 루키의 신부복이 조금 찢겨졌다.
“정말? 이런, 너무 맹목적인 것 아니에요?”
달콤한 목소리로 순간 사라진 악마가 비토레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순식간이었지만, 비토레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반응속도로 몸을 돌려 대검으로 악마의 공격을 피했다. 악마의 손톱은 검고 길게 변해 사악한 기운을 마구 뿜고 있었다. 저것에 한 번 찔리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피막 날개 뿐 아니라 매끈하고 길쭉한, 털이 없는 꼬리까지 흔들거리며 악마가 그를 조롱했다. 긴 손톱을 혀로 슬쩍 핥는 모습이 요사스러웠다. 어느덧 악마의 한 손에는 날카롭고 검은 단검마저 들려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제들 치고 정말로 소원이 없는 이는 없던데요. 당신도 분명 있을 것 같··· ···!”
악마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방금 통구이가 될 뻔 했기 때문이었다.
“헉, 당신...!”
시종일관 여유만만이던 악마가 당황한 이유는 간단했다. 비토레의 대검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악마는 감히 그것이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 확신했다.
“당신...! 우리엘의 심판자였군요...! 왜 말하지 않은 건가요...?!”
“말해야 하나?”
비토레는 가타부타 자신이 감히 우리엘의 이름을 받은 자라고 대답 하지 않았다. 악마의 의문을 해소해 줄 생각 따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푸른 불꽃을 두른 검은, 누가 보더라도 우리엘의 것이었다.
바티칸에서 자신에게 이 정도의 거물을 보내다니...! 안 그래도 창백하던 루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멀쩡하게 빠져나갈 수 없음을 짐작했다. 지금부터 도망치더라도 우리엘은 끈질기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한 천사. 루키는 소멸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망칠 생각인가.”
루키가 몸을 돌려 날아가려 하자, 비토레가 흠, 하고 숨을 고르더니 허벅다리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는 곧잘 뛰어,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날아가려던 악마의 뒷머리채를 잡았다. 악마가 허공에서 두다리를 버둥거렸다. 두피가 당겨 왔다.
“그렇겐 못 두지.”
그 말까지 들은 악마는 심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 검에 불이 붙은 순간부터 이 성당을 가득 채운 성스러운 기운이 흉흉했기 때문이었다. 악마는 제 주제를 알았다. 개미보다 못한 하찮은 인간의 생명을 장난스럽게 갖고 놀 주제는 되지만, 우리엘이 직접 선택한 심판자와 싸울 정도로 강하진 않았다! 하물며 인간계에서는 악마들의 힘에 제약이걸려 있지 않은가. 몇 개월 동안 이 성당을 차근차근 그의 영역으로 만들어 놨어도 그랬다. 우리엘의 푸른 불꽃은 한 번 불붙으면 절대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상의 악을 소멸시킬 때까지 끈질기게 불타오른다. 말하자면, 눈 앞의 이 인간은, 상성상 최악이다.
흉흉한 눈빛의 사내가 뒷머리를 잡고 그대로 악마를 땅에 쳐박았다. 성당 의자 몇 개가 부숴지고 엉망진창이 되었다. 깨지는 유리창과, 부숴진 잔해 아래에서 악마는 띵한 머리를 붙잡았다.
어째 악력도 일반 인간보다 더 강해...! 이것이 우리엘의 축복...!
“커헉...!”
악마가 검은 피를 토했다. 이런 꼴은 수백 번도 더 본 비토레가 불타는 검을 치켜올렸다.
“자, 잠깐, 잠깐, 잠깐...!”
악마가 두 팔로 검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옷이 갈기갈기 찢겨지며 양 팔이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 모두에게 도움 될 만한 게 있으니까 계약하는 건 어때요? 아니, 계약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난 나와 같은 악마들에게 일체의 동정심도 소속감도 없어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성스러운 종교에 숨어든 간악한 악마들을 찾는 걸 도와줄게요! 그러니 제발...”
악마가 덜덜 떨며 빌었다. 여전히, 비토레는 동정심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건 전부 꾸민 행동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