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2화: 시귀屍鬼

새로이 팀을 꾸리는 것은 어디서나,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저번 SS급 게이트 사건 이후로 생긴 많은 빈자리에 @는 팀장 자리에 올랐고, 협회와 조율을 통해 새로운 2팀을 꾸리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 그 우여곡절동안 큰 문제를 일으킨 적 없는 팀원 하나가 어느정도 안정을 이룬 이제와서야 문제를 보이는건 또 무슨 상황일까. 어쩌면 영원히 이렇게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걸까.....  승진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지만, 팀장이라는 것도 정말 쉽지 않다 생각하며, @는 한숨을 내쉬었다.


V는 지나친 원칙주의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모범생'이라고 평가할만한 각성자였다. 이전에도 같은 팀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정말 최저의 휴식만을 취하며 업무와 단련에 몰두하던 그때와 비교하면, 근래에는 동거인이 생기면서 그나마 이따금 휴가도 쓰고, 퇴근 시간도 당겨지는 등(그럼에도 @는 V가 정시에 퇴근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한결 평범한 직장인다운 행보를 보이는 편이라 했다. 


그래서 동거인이 사망한 관계로 그날은 쉬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는 V를 걱정하며 며칠정도 쉬고오라 했지만 그는 얘기한대로 다음날 바로 복귀했다. 주의를 기울여 살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를바 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날 것 같다는 얘기를 괜히 하는게 아니구나 혀를 내두르기도 하였으나, 정작 문제는 그로부터 며칠 뒤에 생겼다.


멀쩡히 출근하는 것 같았던 V가 돌연 무기한 결근을 선언한 것이다. 그에대해 처벌은 후에 얼마든지 받겠다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그는 정말로 협회에 발길을 끊었다. 평소 V의 태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유를 물어도 '개인적인 사유'라며 침묵했다.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던 만큼 다른 팀원들도 의아해했다. 역시 그 동거인이 죽은게 아무리 V여도 힘들었던게 아니냐 얘기가 나왔다가, 그 V가 그렇다고 이렇게 일방적 잠수를 하는게 이상하다고 수근거렸다. @가 보기에도 V는 지난 며칠간 평소보다 조금 더 강박적으로 굴기는 했어도, 이렇게 갑작스레 무너질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면 원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각성자인 만큼 어떤 상태일지 짐작도 가지않았다.


그것이 결국 @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이다. 방문을 거절하는 V에게 @는 팀장으로서 팀원의 상태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했고, V는 그것을 부정할 조항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마지못해 @를 자신의 집으로 들였다.


V는 @가 속으로 가정했던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다. 피곤해보이기는 했지만, 그는 원래도 피곤해보이는 구석이 있었으니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보다 더 눈에띄는 것은, 커튼으로 모든 창을 가린 답답한 집안이었다. 전기등을 켜놔서 바로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희안할만큼 모든 유리창을 커튼으로 가려두었다. 아직 해가 머리 위에 떠있는데도 새카만 암막 커튼으로 둘러싸인 집안은 빛 한점 들지 않았다. 그러고도 현관에 서있는 동안, @의 등 너머로 비추는 햇살이 신경쓰이는 것 처럼 쳐다보고는 안으로 들어오라 채근하는 V의 모습은 @의 신경을 거슬리게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불편하거나 기분나쁘기보다는, 평범히 걷고있던 길에서 갑자기 자동차 소리나, 벌레 소리, 사람들의 잡담소리가 사라지고 침묵 속에 갇힌 듯한... 그래, 이질감이었다.


그새 햇빛 알레르기라도 생긴거냐고 일부러 가볍게 농담조로 물었지만, V는 잠시 @를 보다가 그건 아니라고 답했다. 그 외의 부연설명을 구태여 보태지 않는게 참 V다웠다.


안그래도 새카만 인테리어의 집에 어두운 색의 커텐까지 꼼꼼하게 쳐두니 온통 검은색 벽으로 둘러쌓인 방에 갇혀있는 답답한 느낌이었지만, V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지 @에게 과자 몇가지와 함께 음료를 내왔다. 집에 지금은 이런 것 밖에 없군요. 하는 어조는 협회에서 그에게 보고할때와 한치도 틀리지 않는 평범하고 건조한 어조였지만, 내어온 과자는 제법 유명한 제과점의 것인게 의외였다. 이런 것 줄서서 살 시간은 있냐는 물음에 동거인이 사왔던 것이라고, 조금 전 얘기할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투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되려 @가 숙연해졌다. 


시선을 내린 @는 V의 소매아래 하얀 붕대가 감겨있음을 알아채고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왼쪽 손목에 감긴 붕대는 그 위치가 다소 공교로워 좋지 않은 상상을 하도록 만들었고, @는 결국 V에게 동거인이 죽어서 많이 힘든거냐 물었다. 그의 물음을 들은 V는 잠시 @가 아닌 다른곳을 보았다. 슬쩍 그 시선을 쫓아가니 어느 방이었다. 아마도 동거인이 살았던 방인가? @가 추측하고 있으면 V는 그렇지 않다는 답을 했다. 그 표정은 평소와 다를바 없어보여서 @는 V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파악할 수 없었다.


V가 일방적으로 결근을 통보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상태가 좋아보여서 다행이라는 말을 건네자 V는 죄송하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 부하직원을 대할때면 이따금 느끼던 감각이긴 하지만, 벽에대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떤 화제를 꺼내도 돌아오는 짤막하고 단호한 답에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한숨을 삼키기 위해 시선을 돌리다가 ... ... ...


언제부터 이쪽을 보고있던 새파란 눈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문틈 사이에 분명히 어떤 시선이 존재했는데, 잠시 눈을 깜빡이니 마치 처음부터 열린적 없었다는 듯 어떤 소음도 없이 문은 닫혀있었다.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일순 생각할 만큼. @는 V에게 집에 그 말고도 누군가 있는지 물었고, @는 V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V는 @의 시선이 고정되어있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조금 전 한숨을 삼키던 @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도로록 굴러가는 시선을 보며 @는 V가 고민하고있음을 알아차렸고, 그것 자체로도 이미 긍정한 것과 같았다. V도 그 사실을 이내 깨달았는지, 기어코 내뱉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돌보고 있는 이가 있는데, 방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나 그새를 참지 못한 모양이라고 못마땅하게 이야기하였다. 


그것이 V가 집에서 쉬기로 결정한 이유인가 물으면 V는 또다시 잠시간의 침묵끝에 긍정하였다. 집에 혼자둘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가정사로 추측한 @는 더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물었다. V는 지금껏 가장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결국 그 끝에 나온 답은 '없다'였다. @는 무엇을 고민했는지 추궁하는 대신 한번 더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당부했다. 이번 V의 대답은 빨랐다. 알겠다고 얘기했지만, @는 V가 아까의 선택을 유지하기로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모처럼 같은 팀이고, 팀장인만큼 자신에게 기대주면 좋을텐데 아쉬움은 들었지만 그것은 강제할 수는 없으니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였다.


@는 짧은 면담을 마치고 V의 집을 나섰다. 배웅은 필요없다고 이야기하였고, V는 그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았다. 


협회로 복귀하며, @는 V의 은퇴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했다.

협회의 사람들은 V의 복귀 확률을 반반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런 적이 없던 사람의 갑작스런 기행에 이대로 안나오는건 아닐까 싶어하는 사람이 꽤 되었다.- @는 복귀할 것이라 예상했었으나...


아마 그의 '개인사정'이 해결되지 않는 한은 복귀하지 않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


끼익, 쿵.


@가 떠나고 현관문이 닫히자 비토레는 인상을 썼다. 그 앞에서 얼마간 기다리다가, @가 그의 집앞을 벗어났을 즈음 즈음 현관에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닌데, 겨우 그걸 못기다리는겁니까?"


짜증과 못마땅함이 가득한 목소리에 소심하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못마땅한 얼굴의 루키가 대꾸했다.


"루키는 비토레씨가 말한대로 방에서 안나왔는데."

"방 안에서 얌전히 있었다면 @가 알아차릴리 없지 않습니까. 뭘했습니까?"

"....그냥 살짝 문틈으로 봤을뿐이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는듯 비토레의 인상이 구겨졌다. 루키는 그럼 그것도 하지 말라고 했어야지, 속으로만 대꾸했다. 말로 내뱉으면 비토레가 더 짜증낼거라는 것은 알겠어서, 입만 비죽였다. 루키가 이렇게 신경써주는 것도 모르고.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내내 긴장하고 있던 것이 풀리자 몹시 피곤해진 비토레는 소파에 앉았다. 요 며칠 제대로 잠을 못잔 탓에 더 신경이 날카로웠다. 뻑뻑한 눈을 잠시 감고있다가 뜨자, 창백한 안색의 루키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도 밤에만 돌아다니는 탓인지 창백한 톤의 피부이기는 했으나, 지금은 흡사 핏기하나 없는 시체와도 같았다. 어쩌면 진짜 시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저 아래 피가 흐르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먹은 피를 생각하면 흐르고 있을지도. 루키가 마시는 피의 양은 아무리 튼튼한 편인 비토레라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차할때를 대비해 집에 두었던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여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루키가 굶어죽든 비토레가 과다출혈로 죽든 할 것 같았다. 역시 @에게 회복 아이템을 부탁할걸 그랬나. 하지만 회복 아이템은 비싸고 희귀하다. 그런걸 받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사정을 설명해야할텐데, 그랬다가는 루키의 처분을 장담할 수 없다. 아마 몬스터로 규정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아주 운이 좋은걸 생각하면 연구를 위해 협회로 이송되어 라하데와 만날수도 있겠지만, 다시는 나오지 못할테니 루키가 견디긴 어려울터였다.


비토레는 햇빛하나 들 수 없도록 꼼꼼하게 가려둔 창을 보았다. 저렇게 모두 가리기 전, 마치 흡혈귀 전승처럼 햇빛이 닿은 자리가 불타던 루키의 모습과, 어두운 곳에 두니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멀쩡해진 모습이 차례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맨날 밤에만 다니더니, 이제는 아예 낮에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달빛도 햇빛이 반사되는 거니 영향이 있지 않나 싶었으나, 애초에 루키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보름달이 환한 밤이었다. 달빛도 영향이 있다면 오지도 못하고 한줌 잿가루가 되었겠지. 그러니 밤에는 돌아다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루키를 집에 머무르도록 설득하는 것은 최근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하루이틀이야 비토레의 부탁이니 들어주었지만, 점점 집에만 갇혀있는 것 처럼 느끼며 외출을 하고싶어했다. 하지만 배가고프면 냉큼 지나가는 사람을 물어뜯을 괴물을 도시를 활보하게 둘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최근에 와서는 루키가 만족할만큼 피를 먹지 못했으니 더 쉽게 배고파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배에 손을 올리며 테이블 위의 간식에서 눈을 떼지못하는 루키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집으로 돌아온 첫날, 자제하지 못하고 피를 마신 탓에 비토레가 기절하는 걸 본 이후 루키는 배고프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않았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고, 이런걸 숨길만한 일은 없었던만큼 금방 티가났다. 지금처럼. 그래서 루키가 자제력을 잃기 전에 비토레가 먼저 허기를 채울 수 있도록 해주는 편이었다. 짐승의 날고기로도 해결할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게도 돌아온 후 루키는 인간의 피만 마셨다. 그토록 좋아하던 과자들, 심지어 와플마저도 먹으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했고, 꾸역꾸역 먹어도 다 토해버렸다.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걸 절절히 느꼈다. 지금의 그는... 괴물에 더 가까운 존재겠지.


비토레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손목에 두른 붕대를 풀었다. 요근래 몇번이나 본 행동에 루키가 그 의미를 알아채고 비토레를 보았다. 


"비토레씨, 나 아직 배 안고픈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은 붕대를 푸는 손에서 떨어지질 못했다. 비토레는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혀를 차며 부엌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칼을 들어 손목에 상처를 내고, 오목한 그릇에 흐르는 피를 모았다. 직접 피를 먹게 하기에는 루키가 자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고, 또하나는 ..... ....


조금씩 떨어지는 피에서 시선을 떼어 루키를 보았다. 죽은 루키가 돌아온 그날, 첫 '식사'를 정신없이 마친 루키는 대량의 피를 잃고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는 비토레를 붙잡고 다급하게 죽지 말라고, '계속 자기 곁에 있어달라'고 이야기했다. 루키는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그 후로 비토레는 정말 루키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를 집에 구속해둘지언정 협회를 그만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루키의 곁을 떠나려고하면 마치 사람이 날 수 없는데 나는 것을 시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며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부자연스럽다는 자각은 있었음에도 그러했다. 하지만 루키가 직접 피를 마시지 않고 이렇게 간접적으로 피를 주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 강렬한 거부감이랄지, 억제력이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토레는 요 며칠간을 비교하며 이대로면 이틀, 늦어도 사흘정도면 전부 사라질거라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