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머리는 다른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단추를 채운 것보다 채우지 않은 것이 더 많았다. 입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비토레 선배의 몸을 더듬는 것이 분명 누가 봐도 경험이 많아 보였다! 선배가 저런 조금 곱상하게 잘 생긴 바람둥이에게 넘어가다니?! 비토레 선배가 비처녀라고?! 내가 좋아하던 선도부의 단정하고 무섭고 무뚝뚝하고 군기 잡혀 있는 비토레 선배가! 사실은 몰래 일탈하고 있었다고? 저런 바람둥이의 입맞춤에 눈동자도 풀려서는! 나에게서는 보여주지 않는 표정을 하고! 풍기문란!! 나만이,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용서할 수 없어...!
마음이 아파왔다. 사실 선배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상관 없었다. 선배의 아름다움을, 선배의 상냥함을, 선배의 꼴림 포인트를 아는 것은 나만으로도 족했으니까. 선배가 너무 여러 사람에게 매도를 남발하고 다니기는 하지만서도 선배의 진짜 본모습을 아는 것은 나뿐만이라는 사실로 감지덕지할수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지 못한 내가 모르는 모습들을 저런 가벼운 녀석에게 보여주다니...! 분명 비토레 선배는 저 녀석의 아래에서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헤롱헤롱댈지도 모른다. 어쩌면 길들여져서 조를지도 모르고. 그건 분명히 나는 알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창자가 뒤틀렸다. 하지만 저 녀석은 선배의 진짜 상냥한 마음은 모를 거야.
그래...! 비토레 선배는 너무 눈에 띈다. 보라 머리는 선배의 몸만 노리는 거야...! 분명 그 상냥한 마음만큼은, 나만 알고 있는 거야! 비토레 선배는 협박당하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몸만 노리는 저 녀석 때문에 밤새 슬퍼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선배를 위로해준다고 하면 돼! 선배는 어쩔 수 없이 같이 있는 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야말로 내 착각이었다...
선도부인 비토레 선배는 워낙 여러 일을 맡아 하느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곤 했다. 선배를 짝사랑하는 나도, 선배에게 말할 틈을 노리기 위해서 교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요사이 선배를 몰래 쫓아다니다가 혼나기도 했기에 끝을 봐야만 했다.
오늘 선배에게 고백하고야 말리라. 그렇게 나는 선배가 혼자 남을 때까지 기다렸고... 교실에서 깜빡 잠들고 말았다. 눈을 뜨니 이미 저녁 때는 훌쩍 지나 있었다. 늦게까지 남아 있는 동아리 부원들도 없을 것이다. 야간의 학교에 홀로 남겨진 것일까 불안함이 닥쳤다.
“ ―로 가요. 설마― …법을―…? ”
복도에서 소리가 들린다. 처음 듣는 목소리다. 나는 학교에 남은 것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반가워하며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보라색 뒷통수였다. 어쩐지 익숙한 머리색. 우리 학교의 것이 아닌 교복! 익숙한 기시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분명 그 보라머리 놈이다!
역시, 비토레 선배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문란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비록 오늘 교실에서 잠을 자느라고, (새벽까지 비토레 선배 사진 정리를 하다 보니 잠이 부족했다...) 고백할 기회는 놓쳤지만 다른 의미로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보라 머리의 밀회를 찍어다가 선배에게 보여 주자!
나는 허겁지겁 가방을 챙기고, 휴대폰을 챙기고, 발소리도 나지 않게 신발을 벗었다. 복도의 꺾이는 부분으로 사라졌으니 그 쪽으로 향해서, 어디로 향했는지 찾아볼 생각이었다.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면 괜찮으리라. 야간 경비도 순찰 돌지 않을 시간, 나는 살금살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창밖이었다. 어라, 바깥인가. 아주 대담한 놈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화장실이나 교실, 동아리실 같은 데에서 일을 치룰 줄 알았는데.
나는 창밖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 수영장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수영장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빛도 없으니, 기척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갔다. 목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린다.
“ 처음 치고는 잘 하는 편일지도 모르겠군요. 조금 더 몸에 힘을 빼십시오, 루키. ”
어쩐지 엄격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다... 그것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이기도 하였다.
“ 내가 빠지면 비토레 씨가 구해줄 거니까 괜찮을지도. ”
그 목소리에는 불안감 따위는 없었다. 진정으로 이 자가 나를 구해주리라 믿는 자의 목소리였다. 설령 구해주지 않는다 하여도 그는 변함없이 믿으리라... 하지만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다. 내가 사랑하던, 엄격한 비토레 선배가 모든 것을 벗어던지듯 알몸으로 그 자와 수영장에서 밀회를 나누고 있다는 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탓이다.
젠장, 젠장! 맨 살, 맨몸으로 저렇게 수영 강습이나 해 대고 있고! 얼마나 몸을 붙였을까! 차라리 욕망에 눈이 멀어 짐승처럼 붙어 먹는 것도 아니고! 마치 정말로 사랑이라도 하듯이, 정말로 그렇듯이 왜 얼굴이 발그르슴한거야!
그야말로 물에 젖은 청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청춘에서 빗겨나가 있었다. 비단 청춘 뿐 아닌 정염에서도 그랬다. 투정을 부리며 수영 강습을 받던 '루키'가, 자기가 구해줄 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는 비토레의 말에 입에 뽀뽀나 해대는 것이다. 선배는 뽀뽀를 거부하기는 커녕,
“ 가르쳐 줄 때 집중하지 않습니까? ”
하고 토라진 척 뽀뽀를 받아들였다. 수영 강습은 핑계였다. 뽀뽀는 이윽고 키스가 되고... 물에 젖은 두 사람이 물에 둥둥 떠 다니다가 깊숙히 잠수한다, 하나로 붙어 수면 위로 올라가 이유도 없이 하하 웃는 것을 보며
나는
내 사랑이 박살난 것을 느꼈다.
결국 나는 상냥한 선배의 본모습을 나만 알고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었다. 내가 한 짝사랑은 그저 용기가 없다는 핑계로 만들어진 나의 망상이었다.
그래도 사랑을 접을 수는 없어 나는 집에 와서 물에 젖은 선배를 생각하며 ■■했다.
나는 컴퓨터를 키고 개인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내가 수없이 모아온 비토레 선배 단독 사진들이 휙휙 넘어간다.
망설이다가, 방금 전, 수영장에서 찍은 두 사람의 사진을 올렸다.
부정 못하는 순애하는 커플이다.
....
어쩌면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