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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삿된 것
 붉게 물든 하늘이 점점 남청색으로 어두워져만 갔다.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손목시계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곧 해가 완전히 저물 때였다. 상부에서는 확실히 하기 위해 완전히 밤이 되면 진입하라고 했지만, 비토레는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신부복을 입었지만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군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각 잡힌 태도의 남자는, 심지어 등에 천으로 감싼 대검을 매고 있었다.
 비토레는 눈앞의 웅장한 성당을 올려다보았다. 고풍스러운 양식의 성당은 점점 어둠에 물들고 있었다.
 굳이 확인을 위해 밤에 진입하지 않아도 되겠군.
 노을지는 순간에는 삿된 것과 인간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낮에는 하느님이 내리신 은총이 밝게 비추고 있어 그림자를 확인하기 어렵다. 확실하게 알아차리려면 밤에, 인도하는 등불을 비춰야만 한다. 하지만 비토레는 그 모든 것을 건너뛰어도 상관 없다는 듯,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을 두고 성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제대로 된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흐물흐물 뭉개져 인간 둘 셋이 합쳐진 고깃덩어리, 간신히 눈만 움직이는 황금빛 동상, 여러 명의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핏빛 욕조....... 끔찍한 장난질이다. 그러나 아마도 저 자들이 과욕을 부렸으리라.
 비토레는 그들을 무시하며 성당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검고 깨끗하고 매끄러운 사제복 위의 로자리오가 그가 걸어갈 때마다 흔들린다. 그러다 비토레가 우뚝 멈춰 섰을 때, 십자가 또한 멈추었다.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기도하는 이의 주변에는 어떠한 더러움도 없었다.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르기 힘든 존재들도 없었고, 핏자국도 없었으며, 은은하게 빛이 감도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지옥의 한구석에서 아름다운 이는 기도하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신앙을 의심할 길 없다는 듯이. 사람의 발소리에도 눈꺼풀을 들어올리지 않고.
 비토레가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를 의미하심인가? 그가 기도하고 있는 것은 역십자가였다. 물론 이 난장판에서 홀로 깨끗하게 기도하고 있는 이가 베드로에게 기도하고 있을 리가 없다. 비토레가 딱딱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성당 밖에서부터 네 기운이 느껴졌다.”

 비토레가 등 뒤에 매달린 대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가 대검을 앞으로 휘두르자, 감겨 있던 천이 저절로 풀려 흘러내렸다. 그는 대검을 기도하고 있는 이의 등을 향해 겨눴다. 보랏빛 머리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일어선다. 그리고 몸을 돌린다. 똑같이 사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그를 기만하는 것 같아, 비토레는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는 꽤 반반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어딜 가도 군계일학, 섞이 지 못하고 튈 것 같은 외모였다. 그가 지나간다면 모두 시선을 한 번쯤은 빼앗길 것이다. 마치 이 세계에 발자취를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은, 평생 유랑할 것 같은 이방인의 분위기. 성당의 악한 것은 흉터투성이의 신부가 자신에게 검을 겨누는데도 그 입가의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기이한 마력을 가진 것처럼, 색이 다른 눈을 가진 남자는 비토레를 그저 가만히 쳐다봤다.

 “제 기운이요? 신부님, 왜 그러시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저는 일개 신도일 뿐인걸요....”
 “악마의 거짓된 말 따위 듣지 않겠다.”

 비토레는 삿된 것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대검을 겨눈 것이 단지 위협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악마가 조금 당황했다.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두루는 근육질의 남성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병기 같았다. 당황한 악마가 말을 더듬었다.
 준비했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니, 잠깐, 내 이야기를 좀 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왜,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다들 악마의 속삭임에 홀리곤 하던데....... 너무 성급해요, 인간이라 그런 건가요? 난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니까요, 진짜로.”

 물론 유려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했지만, 그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은 인간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운 감도 있었다. 이렇게 크게 한 탕을 했으니 당연히 바티칸에서 거물을 보냈으리라 생각은 했건만, 느 껴지는 분위기가 일반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당연히 홀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문답무용.”

 비토레가 아예 대꾸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적어도 이 정도의 대답은 해 주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과 흐트러짐 없는 태도에 악마... 루키는 그가 단순히 근육질투성이 인간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귀에 뭐라도 끼고 있는 건가요? 아하... 알겠다. 무슨 성물 같은 거로 방어라도 하고 있는 거죠? 소용 없어요. 밤이 되면 이제 이 성당은 더욱 제 것이 될 텐데요. 당신도 곧 이 곳을 뒹굴고 있는 다른 인간들과 다를 바 없는 꼴이 되겠네요.”

 악마는 이 고지식하고 단단해 보이는 남자의 타락을 잠시간 상상했다. 다른 인간들보다 맛있을 것 같았다.
 악마의 등에서 거대한 피막이 피부와 옷감을 뚫고 튀어나온다.
 검은 박쥐 날개를 달고 악마는 공격을 피했다. 한 번 한 번이 묵직한 공격이었다. 이 인간에게는 특이한 점이 없었다. 굳이 여기까지 이런 자를 보내다니, 한심한 일이다. 단지, 그가 쓰는 무기인 대검 정도만 눈에 띄었지만, 그저 그런 성물이겠지. 루키가 조소했다. 지금은 그를 홀리기 위해 구슬릴 뿐이다.

 “저기, 이름이 뭔가요? 알아 두면 좋을 텐데. 당신의 욕망은 뭔가요? 행운이 따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당신이 원하는 걸 전 들어 줄 수 있어요....”
 나긋하고, 요염하게. 속닥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비토레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걸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들어 주진 않겠지.”

 다시 한 번 검이 휘둘러진다.
 이크! 루키의 신부복이 조금 찢겨졌다.

 “더군다나 나는 악마에게 바랄 소원 따위 없다.”
 “정말? 이런, 너무 맹목적인 것 아니에요?”

 달콤한 목소리로 순간 사라진 악마가 비토레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순식간이었지만, 비토레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반응속도로 몸을 돌려 대검으로 악마의 공격을 피했다. 악마의 손톱은 검고 길게 변해 사악한 기운을 마구 뿜고 있었다. 저것에 한 번 찔리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피막 날개 뿐 아니라 매끈하고 길쭉한, 털이 없는 꼬리까지 흔들거리며 악마가 그를 조롱했다. 긴 손톱을 혀로 슬쩍 핥는 모습이 요사스러웠다. 어느덧 악마의 한 손에는 날카롭고 검은 단검마저 들려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제들 치고 정말로 소원이 없는 이는 없던데요. 당신도 분명 있을 것 같··· ···!”

 악마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방금 통구이가 될 뻔 했기 때문이었다.

 “헉, 당신...!”

 재빨리 벽까지 도망친 악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청난 반응 속도였다. 당황해서 놀라는 꼴이 꽤 순진해 보였다. 그런 모습마저 계산이라고 비토레는 판단했다. 하지만 비토레는 단 한번도 악마에게 동정심같은 걸 가진 적이 없었다.
 시종일관 여유만만이던 악마가 당황한 이유는 간단했다. 비토레의 대검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악마는 감히 그것이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 확신했다.

 “당신...! 우리엘의 심판자였군요...! 왜 말하지 않은 건가요...?!”
 “말해야 하나?”

    비토레는 가타부타 자신이 감히 우리엘의 이름을 받은 자라고 대답 하지 않았다. 악마의 의문을 해소해 줄 생각 따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푸른 불꽃을 두른 검은, 누가 보더라도 우리엘의 것이었다.
 바티칸에서 자신에게 이 정도의 거물을 보내다니...! 안 그래도 창백하던 루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멀쩡하게 빠져나갈 수 없음을 짐작했다. 지금부터 도망치더라도 우리엘은 끈질기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한 천사. 루키는 소멸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망칠 생각인가.”

 루키가 몸을 돌려 날아가려 하자, 비토레가 흠, 하고 숨을 고르더니 허벅다리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는 곧잘 뛰어,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날아가려던 악마의 뒷머리채를 잡았다. 악마가 허공에서 두다리를 버둥거렸다. 두피가 당겨 왔다.

 “그렇겐 못 두지.”

 그 말까지 들은 악마는 심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 검에 불이 붙은 순간부터 이 성당을 가득 채운 성스러운 기운이 흉흉했기 때문이었다.
 악마는 제 주제를 알았다. 개미보다 못한 하찮은 인간의 생명을 장난스럽게 갖고 놀 주제는 되지만, 우리엘이 직접 선택한 심판자와 싸울 정도로 강하진 않았다! 하물며 인간계에서는 악마들의 힘에 제약이걸려 있지 않은가. 몇 개월 동안 이 성당을 차근차근 그의 영역으로 만들어 놨어도 그랬다. 우리엘의 푸른 불꽃은 한 번 불붙으면 절대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상의 악을 소멸시킬 때까지 끈질기게 불타오른다. 말하자면, 눈 앞의 이 인간은, 상성상 최악이다.
 흉흉한 눈빛의 사내가 뒷머리를 잡고 그대로 악마를 땅에 쳐박았다. 성당 의자 몇 개가 부숴지고 엉망진창이 되었다. 깨지는 유리창과, 부숴진 잔해 아래에서 악마는 띵한 머리를 붙잡았다.
 어째 악력도 일반 인간보다 더 강해...! 이것이 우리엘의 축복...!

 “커헉...!”

 악마가 검은 피를 토했다. 이런 꼴은 수백 번도 더 본 비토레가 불타는 검을 치켜올렸다.

 “자, 잠깐, 잠깐, 잠깐...!”
 악마가 두 팔로 검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옷이 갈기갈기 찢겨지며 양 팔이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 모두에게 도움 될 만한 게 있으니까 계약하는 건 어때요? 아니, 계약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난 나와 같은 악마들에게 일체의 동정심도 소속감도 없어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성스러운 종교에 숨어든 간악한 악마들을 찾는 걸 도와줄게요! 그러니 제발...”

 악마가 덜덜 떨며 빌었다. 여전히, 비토레는 동정심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건 전부 꾸민 행동일 테니까.


아니, 정말로 고작 그 이유였던가?
하지만 그 제안은…
죽이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의식중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비토레는 라파엘과의 대담을 떠올렸다.

 “그래서 비토레 씨가 악마 하나를 데리고 다닌다는 이야기군요. 제법 신선하네요.”

 금발의 미청년이 말했다. 그는 비토레의 직장동료였다. 생채기를 치료받던 비토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비토레는 이 정도의 생채기를 굳이 그에게 보여 가며 치료한 적이 없었다. 이 귀중한 치유능력을 지닌 사제는 그와는 비즈니스 관계로 ‘우리엘이면서 다치셨나요? 그 정도는 제게 오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병원에 가세요.’ 하고 제 귀중한 능력을 쓰는 것을 귀찮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비토레 또한 그 말에 딱히 반박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비토레가 악마를 데리고 다닌다는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오자. 남미를 돌며 비밀리에 치료의 기적을 뿌리고 있던 사제는, 돌아오자마자 비토레를 찾아와 이야기를 뜯어 낸 것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치유는 핑곗거리였다.

 “그 악마는 어디에 있나요? 저도 보고 싶은데요.”
 “그 악마는 유혹을 속삭이는 악마입니다. 소원을 속삭인 인간들이 끔찍한 꼴이 되어 있더군요. 굳이 만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재갈을 물린 루키의 모습을 떠올린 비토레가 말했다. 말하지 못하게 재갈을 채웠더니 그 모습이 어째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 같아 재갈을 풀어 주었었지.

 “라파엘, 당신은 유혹에 약하지 않습니까?”

 치유 사제, 라파엘이 금전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비토레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라파엘을 쳐다보았다. 그 말 그대로였다. 라파엘은 돈과 금전 때문에 악마의 유혹에 몇 번이고 넘어갈 뻔 했다.
 그의 치유능력과 성력은 천사 라파엘이 선택한 자 답게 숨길 수 없었지만, 반대로 악마들에게는 ‘난 거물이니 날 유혹하세요’라는 지표와도 같았다. 윗선에 라파엘을 감시하는 전투사제들을 더 늘리는 것을 제안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한편, 라파엘은 속으로 생각했다.
 비토레 씨는 분명 내가 어떤 악마라도 계약한다면 한 시간도 안 되어 찾아와 날 곤죽으로 만들어 놓겠지.......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무서운 직장동료의 눈길에 라파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째 귀중한 것을 자기만 보려고 숨겨놓는 것 같네요. 뭐, 비토레 씨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그렇게 유혹적인 악마라면, 당신은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라파엘의 질문에 비토레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래.
 라파엘에게 대답했던 것처럼, 비토레는 언젠가 자신이 그 말을 번복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아래에서. 이 야해빠진 악마가 혀로 자신의 것을 핥고 있어도,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비토레의 몸은 당연한 한창때의 사내로서, 신체적 자극에 의해 파정까지 일련의 과정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비토레는 동하지 않았다.
 혀와 손가락이 예민한 곳을 건드리면, 비토레는 무심코 부드러운 머리채를 손가락으로 쥐어 버리고 만다. 신음이 흘러나온다. 악마도 인간의 몸을 빌린 이상 당연하게도 인간처럼 호흡한다. 가냘픈 숨이다. 비토레는 자신의 몸을 탐하고 있는 자에게 어떠한 애욕도 들지 않았다.
 악마는 욕망을 먹고 자란다. 비참하게도 비토레에게 종속된 루키는 다른 인간의 욕망을 먹을 수 없었다. 양분이 없어 죽어가며 악마는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나에게 욕망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 유혹 같은 건, 견딜 수 있잖아요. 평범한 인간 몇 마리의 마력보단.... 당신의 욕망을 원해.”

 그는 제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뿐이었다. 모든 악마는 더 많은 인간의 욕망을 원한다. 비토레는 루키에게 먹이를 주며 사육하기로 마음먹었다. 먹이가 되는 것은 오직 비토레 뿐이다. 그러니까, 뒷구멍을 찔꺽거리며 자신의 세 손가락으로 스스로 풀고 있는 루키의 모습에도 동하지 않는다. 비토레가 육체적 욕구가 아닌 다른 욕망마저 가지게 된다면... 저 악마에게 전부 쥐어짜이게 될 것이다. 그럼 목줄을 잡을 수 없다. 놓치고 말겠지. 그저 오늘은 뒤를 쓰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관찰할 뿐이다.
 (지난번에는 루키가 박는 쪽이었다.)

 “좀 더 꼴려하는 게 우리 두 사람에게 전부 낫지 않아요? 당신이 욕망을 찔끔찔끔 줄 때마다 감질맛 나서 못 견디겠어....”

 하아, 한숨을 쉬며 루키는 비토레의 위에서 구멍을 맞췄다. 큰 귀두 갓을 누르고 뻑뻑하게 들어간다. 긁히는 느낌에 루키는 다시 비음 섞인 신음을 흘렸다. 비토레의 것은 두껍고 굵어서 안을 긁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가 박는 쪽일 때, 이런 굉장한 것이 단순한 눈요깃거리가 된다는 점 또한 쾌감에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꼴리지도 않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비토레가 흘끔 접합부를 내려다보았다. 젤을 쓰지 않아도 악마의 몸이란 편리해서, 윤활유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가 루키에게 박힐 때에는 건조하고 뜨거울 뿐이었는데.
 비토레의 대답을 들은 악마가 야살스럽게 웃는다. 접히는 눈가와 도드라진 애굣살이 사람을 홀리는 것 같다. 하지만 비토레의 입장에서는 그저 박히는 와중에도 여유로운 척을 하는 게 가소로울 뿐이다.
 먹이를 주는 쪽은 비토레이지 않은가. 비토레는 못내 심술궂은 마음으로 느닷없이 허릿짓을 했다. 천천히 허리를 아래로 내리고 있던 루키는 당황한 듯, “힉,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균형을 잃는다. 인상을 찌푸린 비토레가 매도한다.

 “빈약한 몸.”
 “이상하다, 다른 인간들은, 흐읏, 이런, 몸도... 좋, 아했는데...♡”
 “다들 맛이 간 모양이지. 네가 어떤 술수를 썼던가.”

 깜짝 놀란 것 같았던 루키는 이윽고 이런 식의 이벤트에 적응한다. 자기도 허릿짓을 살짝살짝 해가며 비토레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다... 찔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루키의 안으로 비토레의 것이 전부 삼켜 들어간다. 꿈틀거리는 내벽이 달라붙어 온다.

 “빈약해서 싫은가요? 으응... 싫으면, 나한테 잔뜩 주면 되는데....”

 다시금 기분 좋은 신음을 내며 루키의 안쪽이 달라붙어 온다. 비토레가 허릿짓을 멈춰도, 루키는 비토레의 위에 쪼그리고 앉은 채로 허리를 흔든다. 푹푹 깊은 곳을 찔릴 때마다 루키의 머릿속은 극심한 쾌락으로 가득찼다. 비토레도 알아차렸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이 악마는 딱히 욕망을 먹지 않더라도 쾌락에 약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루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실천했을 뿐이다.
 둔부가 내려가고 피부와 피부가 맞닿아,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야해빠진 소리는 확실히 십자가가 걸린 방에서 들릴 법 한 소리는 아니었다. 비토레는 음낭조차도 컸고, 몸 전체가 딱딱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허벅지며 몸이 부딪힐 때마다 들리는 큰 소리만큼, 루키의 연약한 살은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딘가에 기대서, 은근하게 허리를 흔들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토레가 루키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는데, 그저 루키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허락할 의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루키는 비토레의 몸에 손을 올릴 수 없었다. 오직 자신의 코어 힘으로만 허리를 흔들며 루키는 입을 벌렸다. 방금 전까지 비토레의 것을 잔뜩 빨고 핥아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입가 근처에 붙어있는 음모와, 혀에 얽혀 붙어 있는 정액 덩어리는 루키가 삼키지 않아도 끈덕지게 붙어 있었다.
 이렇게 농도가 짙으니까, 당신은, 욕구불만인 거야.
 이런 이유를 들며 비토레를 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놀려대면 버릇이 없다고 엉덩이며 허벅지를 두꺼운 손으로 잔뜩 맞고 만다. 더군다나 고순도의, 다른 것들이 건들지 않은 한창 때의 수컷의 농도 짙은 정액은 루키에게 특식 같은 것이었다. (문제점이 있다면 이 특식만 먹을 수 있고, 자주 먹을 수 없다는 것이겠지만)
 루키는 고양이처럼 주먹을 쥐고 팔꿈치를 가슴 쪽으로 모았다. 어쩌면 개 같기도 했다. 손과 팔이라기보다는 앞다리와 앞발처럼 흉내낸다. 헥헥대며 허리를 흔드는 꼴이 꼭 발정기의 동물 같아 보이긴 했다. 실제로 쾌락 때문에 꼬리뼈 끝에서 길고 매끈한 검은 악마 꼬리가 숨겨지지도 않은 채로 튀어나왔으니까. 입술을 핥고, 낑낑대며, 루키가 말했다.

 “당신이 나를 살찌우면 되잖아요.... 잔뜩 싸서...♡ 여기도 빵빵하게... 으응...♡”

 허리를 돌리며 말하는 그 순간, 비토레의 머릿속에서 어떤 상상이 오갔는지 루키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머릿속을 읽는다거나, 호감을 느끼게 한다거나... 그런 것들은 죄다 봉인 당했기에.
 하지만 루키의 말과 행동이 비토레의 어떤 스위치를 누른 것만은 분명했다.
 벌떡 상체를 일으킨 비토레가 루키의 등을 양 팔로 거세게 끌어안는다. 순식간에 비토레에게 안긴 꼴이 됐지만 안겼다기보다는 몸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혹은 비토레가 참지 못하고... 루키의 몸을... 그저 어떠한 도구처럼 쓰기 위해 행동한 것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꽉 내려았기 때문일까, 더 깊숙히 들어와 있는 비토레의 성기는 더욱 단단해진 것 같기도 했다. 비토레의 숨소리가 짐승처럼 들려온다. 루키는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 때문에 몸이 더욱 달아오른 것을 느꼈다. 긴장 때문일까 동공이 커지고 유두가 딱딱해져, 비토레의 가슴에 마구 비벼진다.

 “잠, 까안, 흐아, 앗...!”

 순식간에 페이스를 잃은 루키가 비명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두껍고 거대한 것이 퍽 소리를 내며 아플 정도로 파고들었다가, 귀두갓이 내벽을 긁고 끌어내리며 다시 바깥으로 빠지고, 다시 들어오고... 더 이상 깊게 들어올 수 없는데도 루키를 괴롭히듯이 집요하고 깊숙히 박힌다. 루키는 쾌락에 머리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마치 아랫구멍이 아니라 뇌가 헤집어지는 느낌... 눈앞에 별이 휘도는 것만 같다. 비토레는 인상을 찌푸린 채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신음도 흘리지 않은 채로 묵묵히 루키의 아래를 헤집어 놓는다. 아예 루키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 자기 편할 대로, 좋을 대로 박아 대고 있었다.
 힉, 흐윽, 헥... 혀를 빼물고 루키가 사람같지 않은 신음소리를 흘려댔다. 대다수의 인간이라면 흥분할 수 밖에 없는 반응에도 비토레는 묵묵히 허릿짓을 해 댔다.
 (아니, 어쩌면 흥분해서 허릿짓에만 집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루키를 허벅지 위에 앉힌 자세로 허릿짓을 해 대다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옆으로 하더니, 아예 루키를 잡아 들어올려, 이번에는 옆으로 누워 한 쪽 허벅지를 들어 올리고 마음에 드는 곳을 찔러 댄다. 박힐 때마다 더욱 조여 오는 루키의 가장 연약하고 예민한 스팟을 찾아 두꺼운 것으로 때리듯이 찔러 대면, 루키는 몸을 버둥거리다가 이내 힘을 빼고 절정에 이르렀다.

 “살찌우기 이전에, 주는 걸 다 받아 먹을 순 있는지 모르겠군.”

 비토레가 냉정하게 말했다. 루키가 반쯤 까뒤집은 눈으로 무슨 소린지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제 비토레는 그를 아예 엎드려 눕혀 놓고 박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대 시트에 신음이 먹힌다. 팔을 뒤로 하고, 손목을 잡히니 반항할 수 없다. 박힐 때마다 척추뼈를 타고 찌릿찌릿한 쾌감이 전해져 온다. 마구 빳빳해지는 루키의 앞과, 꼬리를 보고 비토레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힘이 꽉 들어간 허벅지는 근육과 살이라곤 없다. 하지만 부드러운 피부는 꽤나 만질 맛이 났다.
 제 아래에서 욕망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악마를 보며 비토레는 오늘도 확신한다.
 나는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는……
잡아먹히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닌가?
그런 일말의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신을 속이는 것처럼, 비토레는 온몸으로 루키를 덮었다. 누구도 볼 수 없게, 루키는 짓눌려졌다. 이윽고 그는 무게감이 느껴지도록 거친 허릿짓을 해 댔다. 욕구라는 것은 충분히 먹였는데도. 이 못된 악마에게 자신의 씨앗을 듬뿍 줘서 다른 인간을 지키겠다는 핑계 삼아, 계속, 계속, 쾌락에 먹히듯이······.

 신이 보지 않는 밤은 깊어져만 간다.